이번주에 배운 것
인정투쟁 본문
이용수 운동가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했다는 노컷 뉴스의 기사를 보고 진중권은 윤미향이 피해자를 '대리'하려 든 게 불화의 계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실관계는 제 3자인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그가 정의연과 같은 단체에 대해 느꼈을 복잡다단한 심정은 단정지어 말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돈'을 위해 자신들을 앵벌이로 앞세웠다는 것은 피해자가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대리인'의 동기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의연과 같은 단체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들에게는 오히려 일본의 극우 단체가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아니었을까. 그래야만 국내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이어지니까. 마치 인셉션의 림보에 빠진 것처럼... 피해자와 학생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에 나가 허공에 대고 메아리를 외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용수 운동가가 직접 미국의 하원의원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피해자로 '박제' 당하기 전에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직접 말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윤미향이 이용수 운동가의 출마를 반대한 것 가지고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반응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치인이 된 이상 그의 과거 행적 중 일부가 해결과는 거리가 먼 부분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등한시한 건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피해자를 박제시킨 채 일부 가해자를 도려내며 전진할 셈인가?